Language

현재 위치
  1. 게시판
  2. 편지 읽기

편지 읽기

편지를 읽어주세요.

게시판 상세
제목 숨을 쉰다. 가쁘게, 기쁘게.
작성자 postershop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22-06-29 14:37:50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430

그곳은 아침일까. 나는 하루를 비행하며 이곳에 왔다. 가만히 앉아 한숨도 잠에 들지 않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밤은 새지 않았으니까. 해가 뜨는 방향으로 나아가 고작 아침에서 점심으로 도착했을 뿐이다.

그래. 너에게 가장 먼저 전화 하자. 그리 약속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는 그 대신 숨 쉬는 시늉을 했다. 바깥에 한 시간은 있었던 금붕어가 다시 호수로 돌아간 것 같이. 시원한 공기로 가슴을 부풀리고, 다시 뜨거워진 숨을 연거푸 내뱉었다. 한 여름에도 입김을 보았다고 하면 네가 믿을까.

그런 게 나뿐만이 아니어서, 나는 한참이나 기차역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들 숨을 쉰다. 가쁘게. 기쁘게. 도착과 동시에 숨 쉬는 시늉을 하기로 입국 심사관과 약속한 것이라 믿어야지. 겨우 이런 시시한 생각이 떠오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묵었던 그 방에 돌아와서도, 계속 떠올렸다. 넓은 자연과 숨 쉬는 광경. 분명 너도 그랬겠지. 너는 기침이 났을까. 입김을 봤을까. 그리고 나처럼 이유를 궁금해했을 거다. 왜 숨 쉬는 시늉을 하게 되는지. 넌 어떤 답을 내렸나.

나는 옷을 벗던 네가 보인다. 부끄러워하는 나와는 달리- 역할극이 끝나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은 사람처럼 자유로운. 그리고 분명 숨 쉬는 시늉을 했었다. 그래. 나무는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너도 그러리라.

모두 기차에서 내리면 꽃과 풀과 커다란 나무를 보게 되고- 이곳에선 연극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아는 걸까. 그러니 약속처럼 분장을 지우고, 옷을 벗고 개운한 숨을 쉬는 게 아닐까.

아니, 연극을 하더라도 이곳에선 구태여 잘할 필요가 없다. 옷을 벗은 나무들 주위로 가장 밝은 조명과 더없이 아름다운 꽃다발이 있고, 새들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기꺼이 축하해준다.

자, 나도 한 꺼풀씩 옷을 벗는다. 나무처럼 춤을 춘다.

언젠간 네가 온다면- 너와 나는 벌거벗은 채 가만히 서 있기로 하자.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WORLD SHIPPING

PLEASE SELECT THE DESTINATION COUNTRY AND LANGUAGE :

GO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