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아침일까. 나는 하루를 비행하며 이곳에 왔다. 가만히 앉아 한숨도 잠에 들지 않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밤은 새지 않았으니까. 해가 뜨는 방향으로 나아가 고작 아침에서 점심으로 도착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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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에게 가장 먼저 전화 하자. 그리 약속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는 그 대신 숨 쉬는 시늉을 했다. 바깥에 한 시간은 있었던 금붕어가 다시 호수로 돌아간 것 같이. 시원한 공기로 가슴을 부풀리고, 다시 뜨거워진 숨을 연거푸 내뱉었다. 한 여름에도 입김을 보았다고 하면 네가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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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나뿐만이 아니어서, 나는 한참이나 기차역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들 숨을 쉰다. 가쁘게. 기쁘게. 도착과 동시에 숨 쉬는 시늉을 하기로 입국 심사관과 약속한 것이라 믿어야지. 겨우 이런 시시한 생각이 떠오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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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묵었던 그 방에 돌아와서도, 계속 떠올렸다. 넓은 자연과 숨 쉬는 광경. 분명 너도 그랬겠지. 너는 기침이 났을까. 입김을 봤을까. 그리고 나처럼 이유를 궁금해했을 거다. 왜 숨 쉬는 시늉을 하게 되는지. 넌 어떤 답을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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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을 벗던 네가 보인다. 부끄러워하는 나와는 달리- 역할극이 끝나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은 사람처럼 자유로운. 그리고 분명 숨 쉬는 시늉을 했었다. 그래. 나무는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너도 그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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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기차에서 내리면 꽃과 풀과 커다란 나무를 보게 되고- 이곳에선 연극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아는 걸까. 그러니 약속처럼 분장을 지우고, 옷을 벗고 개운한 숨을 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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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연극을 하더라도 이곳에선 구태여 잘할 필요가 없다. 옷을 벗은 나무들 주위로 가장 밝은 조명과 더없이 아름다운 꽃다발이 있고, 새들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기꺼이 축하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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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나도 한 꺼풀씩 옷을 벗는다. 나무처럼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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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네가 온다면- 너와 나는 벌거벗은 채 가만히 서 있기로 하자.